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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의 어머니는 우등생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매년 SKY에 30명씩 보내는 자사고 이과에 진학했던 철수는 고등학교 3학년 6월 모의평가에서 거의 올 1등급을 맞을 정도로 학업에 열중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이 성적만 유지되면 SKY는 따 놓은 당상이지 ㅋ'
그렇게 철수의 어머니는 겉으론 티내지 않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을 응원합니다.
시간이 지나 철수는 드디어 수능을 봅니다. 제 2외국어까지 끝낸 철수의 표정이 굉장히 애매합니다. 잘 본 것 같지도, 못 본 것 같지도 않은 표정의 철수를 본 어머니는 정시성적의 기대감을 내려놓고 며칠 뒤에 볼 논술시험을 기대합니다.
“첫 교시부터 긴장을 너무해서 쭉 망쳤어...”
함께 저녁 외식을 하며 논술 최저 또한 못 맞출 것 같은 느낌이든 어머니는 결국 철수와 함께 12월에 바로 기숙재수학원으로 향합니다. 한 달에 300씩 총 12개월 동안의 4000에 가까운 학원비를 내며 옴짝달싹 없이 학원에만 갇혀 열심히 공부했던 철수는 시험 당일 날 또다시 긴장을 합니다. 1년 전 국어부터 쭉 망쳤던 시험 부담감이 또 한 번 가슴 속을 채웁니다.
“엄마, 내가 미안해...”
열심히 뒷바라지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못 얻은 철수를 본 어머니는 아들이 성적에 맞는 대학에 진학해 거기서 열심히 하여 앞으로의 삶을 더 잘 살아가길 바랍니다.
“대학간판이 인생에서 별로 중요한 게 아니야. 결국 대학가서 어떻게 하는지가 훨씬 중요하지.”
“나한텐 중요해. 삼수할래.”
“넌 공대라서 어딜 가도 취업할 때 문제없어~”
“지난 건 잊어버려. 아무 소용없어~”
부모님과 토론 끝에 삼수가 아닌 서울 중위권 대학에 철수는 우선 입학합니다.
근데 대학에 입학한 후 아들의 표정이 더욱 우울해 보입니다. 그래도 애가 대학가면 재밌게 놀 줄 알았는데, 행복해 보이긴 커녕 더욱 찡찡거립니다.
“엄마, 나 반수학원 등록하게 돈 좀 주면 안 돼?”
“입시는 잊어버려. 지금부터가 중요한 거야.”
“어떻게 잊어버려!! 엄마가 내 아쉬움을 알기나 해?”
“다시 해도 안 됐잖아!!”
“그니까 또다시 하면 자신 있다고!!”
싸우고 싸우다 지쳐버린 철수는 결국 22살에 군대에 입대합니다.
‘애가 군대에서 사회생활도 배우며 대학간판이 점점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이제 깨달았겠지...’
철수의 어머니는 아들이 전역한 후에 얼른 좋은 기업에 들어가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벌길 바랍니다.
그러나 막 군대를 전역한 철수는 이번엔 편입 이야기를 꺼냅니다.
“니가 언제까지 대학간판에 집착할거야!! 다른 애들은 벌써부터 취업 준비해. 요즘 취업할 때 학벌 많이 안 본다고. 공기업 이런 덴 다 블라인드 채용한대잖아”
“나도 알아. 군대 가니까 고졸부터 전문대생, 생전 보지도 못한 무식한 애들이 다 있더라.”
“그니까 너보다 못난 애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혼자 왜 그러는 거야?”
결국 철수는 설득이 되지 않은 채, 군대에서 모은 적금을 깨서 편입전문학원에 등록합니다.
철수는 대학간판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왜 이렇게 대학입시에 집착할까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바로 재수학원과 고등학교 친구들이 나보다 수능 백분위가 높은 대학에 갔기 때문입니다. 이게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갓 성인이 된 어른이들의 입장에선 엄청난 상대적 박탈감과 낮은 자존감을 안겨줍니다. 특히 3, 6, 9 모의평가 성적에서 주변 친구들보다 늘 우위를 가졌던 어른이들은 하루 종일의 시간을 함께했던 고등, 재수학원의 친구들을 후에 다시 만나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심한 트라우마를 안습니다.
어른인 부모님은 사회적 관점으로만 생각하니 ‘이 정도 대학만 가도 취업할 때 딱히 큰 문제는 없으니까’라고 여기지만, 사회경험이 없는 N수 어른이들은 ‘겨우 이 정도 대학가기 위해 그동안 그 지랄을 해댔나?’라며 고등학생 관점으로 사고합니다. 보통 이렇게 해서 아쉬운 입결의 대학을 간 어른이들은 대학에서 새로 만난 인간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그냥 그 주변을 계속 겉돌며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집니다. N수에 성공해서 진학을 한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더욱 즐겁게 노는 내 모습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이 트라우마는 거의 20대 중반까지 계속되며 군대에 가서도, 연애를 하면서도 ‘내가 그때 이렇게만 했더라면...’라는 생각이 잘 떠나지 않습니다. 내년도 입시요강, 대학 동기들 몰래 반수하는 방법, 삼수 독학 후기, 외국대학 유학원까지 남들 몰래 모조리 찾아보며 어떻게든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철수는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을 찾습니다.
‘쟤들은 이 대학을 한 번에 왔는데, 난 뭐지? 누가 내 고생을 알아주지도 않고.’
‘성공한 놈들은 나 신경도 안 쓰고 재밌게 놀고 있겠지? 엿같다 진짜....’
철수의 입장에서 사회적으로 남들과 비교해봤을 때 시간도 아끼고, 입시의 서러움도 달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그 ‘편입’입니다. 일반편입이면 2년을 아껴 3학년 때부터 새로운 대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으며 인문계 자연계 공통과목인 편입영어를 공부하는 건 후에 토익이나 교환학생갈 때도 좋은 영향을 주니 일석이조의 의미를 갖고 공강시간, 군대 자기계발시간 등 어떻게든 시간을 내 주변 사람들과 웬만해선 큰 정을 붙이지 않고, 혼자서 공부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학벌의 중요성은 점점 감소하고 결국 대학에 가서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지만, 주변 친구들에 극강히 예민한 어른이들은 그렇게 과거의 실패에 다시 집착합니다.
그렇다면 철수의 어머니는 철수에게 어떤 조언을 해줘야 좋은 위로와 설득이 될까요? ‘너의 부모는 너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한다’의 마음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절대 틀린 선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빠른 취업을 바라며 무작정 안 된다고 비판하는 건 사실 철수의 개인적 측면으로 봤을 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애들의 마음은 아직 대학입시에 머물러 있는데, 부모는 먼 산의 취업 이야기만 하니, 입시도 하고 취업도 빨리 해야한다는 상황이 되어버려 수험생의 감정을 오히려 더욱 부담스럽게 만듭니다. 사실 부모의 입장에서도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자식의 입시도전은 굉장히 부담스럽게 다가오며, 아이가 과거에 집착해 좋은 발전을 못 이루는 모습을 보는 것도 굉장히 답답하지만, 결국 그런 안 좋은 감정을 감추고 아이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여러 번 생각해보는 것이 부모의 진짜 역할이기도 합니다.
군대에서 본 학력 낮은 또래들은 철수의 입장에선 아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존재로 보입니다. 그들은 애초에 대학 입시에 관심 없어 보이는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철수가 유심히 보는 건 군대에서 만난, 나보다 입결 높은 대학을 간 사람들입니다.
‘쟤들은 대체 어떻게 해서 저 대학을 간 거야??’
결국 입시 스트레스에 고통받는 어른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정서적으로 큰 위로를 해줘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어느 정도 아이가 안정이 됐다면 N수하는 N년이란 시간동안 할 수 있는,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경우를 말해주며 선택의 폭을 넓혀줍니다.
“대학 웹드라마를 너도 즐겨봐서 잘 알듯이, 스무 살 때의 감성은 스무 살 때 밖에는 느낄 수 없어. 너가 N수를 택하면 평생 경험해볼 수 없는 설렘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거야. 또 너가 N수하는 비용을 빼서 피부관리를 받으면 남들보다 훨씬 외모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거. 외모가 니 나이 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지?
나중에 중요해지지도 않는 학벌을 위해 N수를 할래 아님 엄마가 말한 다른 새로운 장점을 택할래? 선택은 너의 몫이지.”
평생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는 철수의 Wants를 자극해 피부로 와닿습니다. 부족한 점수에 맞는 대학에만 갈 수 있으니 선택의 폭이 늘 없다고만 생각했던 본인에게 좋은 선택권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걸 깨달은 후, 부정으로 가득한 사고는 긍정적으로 변화합니다.
이렇듯 사람을 설득시키는 건 선 감정적 공감, 후 긍정적 방향 제시 순으로 진행합니다.
사실 지나친 이야기일 수 있지만, 편입에 성공해 그렇게 원했던 대학간판을 따더라도 본인이 누리지 못했던 신입생 때만큼의 대학생활의 설렘과 즐거움을 느끼는 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나이에 예민한 20대 초반 어른이들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느끼며, 이미 사회에서 이것 저것 경험해본 본인 또한 그들과 정신연령이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 때문입니다. 결국 입시판에 찌들어버린 같은 편입생끼리 술을 마시며 그들과 함께 더 좋은 추억을 쌓습니다.
어느 때나 과거의 실수에 대한 집착이 아닌, 그것을 배움의 계기로 삼아 긍정적 방향으로 인생을 밀어붙이는 방법을 깨닫는 순간이 어른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먼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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